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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나주여행코스 중에서 나주곰탕 하얀집에서 나주곰탕 맛을 보고 나서 부른 배도 꺼줄겸 산책삼아 가볼 수 있는 곳으로 나주 금성관과 나주목문화관을 다녀왔습니다.


나주여행 나주 금성관 나주목문화관 나주 가볼만한곳


나주 금성관과 나주목문화관은 무엇보다 나주곰탕거리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서 따로 차로 이동하지 않고도 걸어서 바로 갈 수 있어서 이동 동선이 편해서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나주가볼한곳으로 추천해드리고 싶은 곳입니다.



  나주여행 나주 금성관 위치

네비 주소 : 전남 나주시 금성관길 8 (전남 나주시 과원동 109-5)




 나주의 역사와 나주 금성관의 의미


나주는 백제 때의 이름은 발라구누이며 무루론 백제 이전에는 불미지국(이병도설)이 있었다고 추정합니다. 통일 신라 때 금성군(금산) 900년에 지금의 이름인 나주ㅜ가 되어 982년 (성종2년) 나주목이 되었다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나주관찰부(16개군 관할)가 설치되고 1896년 전국을 13도로 나누어 전라남도청이 광주에 설치될 때까지 약 천년동안 남도의 중심도시였다고 합니다.


나주 금성관은 나주목관아 중심공간이었던 나주목 객사 공간으로 관아는 넓게 해석하면 읍성과 내부의 각종 건물을 이르는 말로 객사는 관찰사가 관할구역을 순행할  때 업무를 보던 곳이자 주우앙 사신이 지방에 오면 묵던 곳이었으며 특히, 객사의 정청은 전패와 궐패를 모셔두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망궐례를 행하던 공간이었는데 다시 말해 사신을 접하고, 왕정의 위덕을 펴서, 관부의 위엄을 세우는 곳이었습니다.





 나주 객사 금성관 중삼문


아래 사진의 중삼문은 나주목 객사 금성관의 외삼문과 내삼문의 중간에 있던 출입문이었다고 합니다.






금성관의 동,서익헌과 망화루 등은 일제때 없어지고 금성관만 남았으나 이를 개조하여 사용함으로서 원형이 상실되었으며 나주군농회(후에 농업협동조합)가 1921년에 만들어지면서 금성관 우측에 벽돌집이 지어졌으며 금성관 동쪽에 1936년에 목조 회의실이 건립되었으나 1989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금성관 앞을 가렸던 나주군청사는 두차례에 걸쳐서 지어졌는데 현관출입구 서쪽건물은 금성관의 내삼문 자리에 1966년 당시 450만원을 투자하여 지었으며 현관 동쪽 건물은 1977년에 기존건물에 이어 지어 청사로 사용하였습니다. 1995년 나주시와 나주군이 통합되면서 금성관 주변 복원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금성관 뒤쪽으로 가보면 커다란 은행나무 2그루가 자리르 잡고 있는데 수령이 약 650년으로 나주시에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650년이란 시간만큼이나 웅장한 은행나무의 모습에  기가 살짝 눌리는 기분이 드는데 가을에 은행나무잎이 노랗게 물들때오면 정말 이쁠 것으로 보입니다.





 나주여행 나주목문화관



나주 금성관을 둘러보고 날씨가 너무 더워서 나주목문화관을 패스할까 생각하다 바로 옆이고 실내이기 때문에 시원할 것 같아서 들어가보았는데  역시 잘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만큼 시원한 실내에서 나주의 역사에 대해서 보다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전라남도 나주시는 고려시대 성종(983)때부터 1895년 나주 관찰부가 설치될 때까지 약 1,000여년이 넘는 기간동안 나주목이 있었으며 목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큰 고을에 두었던 지방행정단위였으며, 나주목문화관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나주가 목사고을이었음 알리기 위해서 세운 문화 전시관으로 과거 금남동사무소를 개조해서 2006년 10월 19일에 개관하였습니다.




 목(牧)이란?


목이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지방행정 단위로 고려시대 중앙집권화 정책으로 지방의 중요 거점 지역에 목을 설치하였습니다. 고려 성종 2년 (983)에는 12목, 현종 9년(1018)에는 8목, 조선시대에는 20목을 두고 각 목에는 정 3품의 지방관인 목사를 파역하였습니다.


특히 고려 현종 때의 전국을 5도 양계로 하는 지방행정 제도를 갖추었지만 도 단위의 안찰사는 임시적 감찰 업무난 수행할 뿐 실질적인 업무 지휘는 목에서 하였습니다. 목은 고종 32년(1985) 부, 목, 군, 현의 명칭을 군으로 개편하면서 없어졌습니다.


나주목문화회관에서 삼국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주목의 변천과정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시대 성종때 전국에 12목이 설치되었고 고려 현종때는 8목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20목이 전국에 설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옹관 고분 유적의 중심지 나주


나주는 영산강이 관통하는 나주평야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어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기반으로 선사시대부터 농경무누화가 전개되어 생활의 근거지로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또한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된 대형 옹관, 고분들은 나주에 강력한 세력을 가진 고대국가가 형성되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나주 대안리, 신촌리, 덕산리, 복암리 고분군, 오량동 토기 가마터 등지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동신발, 환두대도, ,은제관식 등의 유물들이 고대 사회의 풍습과 세력 형성, 경제활동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습니다.





 의병운동의 중심지 나주


조선시대 나주는 국난극복의 선봉에 있었는데 나주는 임진왜란 때 김천일이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곳이며, 후조당 이용제 장군, 김해부사 이종인, 동강면의 최오 의병장 등 나주의 의병들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전국에서 가장 왕성한 의병 활동을 벌였습니다.


이러한 나주의 의병 정신은 나주를 지탱하는 정신적 원류로서 단발령 사건, 한말 호남 의병항쟁, 궁삼면 토지회수 투쟁, 광주학생독립운동, 나중농업보스학교 학생들의 만세시위 사간 등 일제강점기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나주 서부길, 동부길


나주에서 찜통같은 무더위만 아니었으면 나주 서부길, 동부길 모두 둘러보고 싶었는데 고려시대부터 구한말까지 천여 년 간 전라남도를 품고 다스렸던 전라도 터줏대감 나주의 읍성권을 구석구석 돌아보는 천년길이 바로 나주 서부길, 동부길입니다.


서부길은 조선시대 서부면에 해당하던 길이며, 조선 향리들이 살던 전통동네를 걸어서 둘러보는 약 3km 코스로 1시간 ~ 1시간 30분이 소요됩니다.


동부길은 조선시대 동부면에 해당하는 길로 주로 일제강점기에 개발된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약 5km 코스로 2시간 소요되는 자전거 코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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